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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생활/경험담

도쿄에서 홀로 보내는 추석.

by 킨쨩 2021.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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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되었지만, 일본에서는 8월 15일을 오봉(유사 추석)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쉬지 않는다. 때문에 추석에도 평소처럼 지낸다. 근처에 사는 친구는 가족들과 통화를 하고, 친구 여자애를 불러서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잠시 거기서 놀던 나는 슬슬 집으로 돌아온다. 닭장 같은 기숙사 속에 갇혀 지내는 나는 따로 친구를 부르지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밀린 일을 묵묵히 해낸다. 한국에 살던 시절에는 명절에 동생과 게임을 하면서 티격태격 싸우곤 했다. 그리고 맛있는 요리들을 배불리 먹고 나서 뒹굴거리고, 이따금 친척들을 조금 만나기도 하던 추석. 사실 추석이라고 해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거의 친척들을 보지 못 했다. 뭐, 이제는 아무래도 좋지만.

잠시 바라보는 핸드폰 속에서 보름달의 사진이 환하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아까 보름달이 잘 보였었지. 거기까지 생각이 이른 나는 내가 직접 찍어보기로 마음먹는다. 어지간한 사람들보다는 내가 잘 찍을 자신이 있으니까. 방구석에서 잠들어있는 망원렌즈와 이따금 사용하는 카메라를 꺼내 든다. 렌즈를 바꾸고, 집 열쇠와 핸드폰, 삼각대와 함께 집 밖으로 나선다. 어째선지 집 앞에 엠뷸런스가 멈춰있다. 약간 내가 수상해 보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달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간다. 8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밖에 나와있다. 근처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 험상궂은 인상의 아저씨, 퇴근한 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지나가는 직장인들…

나는 적당히 주변 건물의 높이가 충분히 낮아서 달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먼저 손떨방 기능의 파워를 확인해볼겸, 손에 들고 달을 찍는다. 예쁘게는 찍히는데, 내가 바라는 만큼 선명하게 촬영되지는 않는다. 몇 장 더 찍어보던 나는 이윽고, 역시 삼각대가 답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빠르게 삼각대를 핀다. 삼각대까지 펴고 아주 긴 대포 같은 렌즈를 달고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내 모습은 수상한 사람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사람이 없는 곳에 가고 싶었지만, 그만큼 수고를 들이기는 싫어서 포기하고 다시 뷰파인더를 들여다본다. 약간 구름이 지나가면서 달무리를 형성해서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으로 찍으면 달이 너무 하얗게 나와서 안 예쁘겠지.

며칠 전에 꽤 큰 태풍이 지나간 덕분인지, 밤공기가 꽤나 맑은 느낌이다. 평소에도 서울보다는 훨씬 맑고 파란 하늘을 자랑하는 도쿄지만, 태풍 덕분에 한층 더 맑아서 인지, 달이 선명하게 보인다. 사실 내가 일본에서 살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세먼지가 한국의 절반도 안된다는 점이다. 분명 한국보다 더 미세먼지가 많아야 할 것만 같지만, 중국과의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코로나 이전에는 마스크를 쓸 일이 거의 없었다. 아무튼, 맑은 하늘의 달을 바라보면서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사진을 찍어보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한다. 그냥 노출을 낮춰서 달을 선명하게 찍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스팟 측광 기능을 사용해보기로 한다. 지금까지 거의 사용해본 적 없는 스팟 측광. 요즘 카메라들은 초점이 맞는 부분에 스팟이 연동돼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나의 캐논 6D는 발매한 지 거의 10년이 된 카메라라서 그런지, 가운데 부분만 지원하는 모델이다. 그렇기에 달을 정 가운데에 최대한 맞추고 이리저리 카메라를 만진다.

어찌저찌 최대한 넓은 DR(밝기를 나타낼 수 있는 범위, Dynamic Range)에 달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한 나는 같은 설정으로 몇 장을 더 찍어보고, 약간씩 달 위치도 바꾸어서 사진을 담아본다. 생각보다 예쁘게 잘 담아진 것 같다. '집에 가져가서는 나사에서 찍은 사진처럼 보정해봐야지' 하고 속으로 씨익 웃는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온 나는 사진을 바로 보정한다. 색온도를 낮추고 약간 밝기를 올리고 대비를 강하게 준 다음, 하이라이트와 화이트의 영역을 섬세하게 조정한다. 그리고 달에 들어있는 색깔도 조금 빼주면 아주 약간 색을 띄고 있지만 회색에 가까운 달이 완성된다!

달 사진을 자랑하는 다른 톡방들에 나의 달 사진을 보내서 자랑한다. 나도 찍어보았다는 멘트와 함께. 약간 찐따같지만 재밌다. 카메라나 핸드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은 톡방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달 사진을 올리거나,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별 관심 없는 곳에서는 그냥 넘어가고, 약간 추석에 흥미가 있는 곳에서는 몇 마디 더 해나간다. 달 사진을 찍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인스타의 스토리에 올린다. 아, 그리고 삘 받은 김에 이렇게 글로도 기록을 남긴다.

매년 추석 즈음에는 방학이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간 김에 가족들과 만나서 시간을 많이 보내왔던 것 같다. 새삼스럽지만, 지금 이렇게 혼자서 궁상을 떨고 있는 것도 전부 코로나 때문이리라. 내년 이맘때 즈음에는 한국에서 추석을 보내고 싶지만, 내년부터는 이제 나도 직장인이라 연차를 잘 맞춰서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신입이니까 이제는 맘대로 쉬기도 힘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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